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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아서 이룰 것이 없다. 다만 물들지 않으면 된다
 관리자  | 2010·10·02 09:29 | HIT : 4,379 | VOTE : 477

명상법회가 이제 익숙해지셨죠? 설법전을 크게 한 200평짜리 지어 놓으면 거기에 꽉 차게 앉아서 명상법회를 하면 근사하고 멋이 있지 않겠나? 멀지 않은 날에 그런 때가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앉아서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절에 와서 30분 이렇게 명상하는 것이 더없이 귀중하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뭘 하는 거냐? 앉아서 스스로 우리가 우리 자신,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그런 시간인 만큼 이것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 어디 있느냐?

조선 오백년 동안을 대표하는 최고의 고승은 서산스님입니다. 이 서산스님은 실질적으로 아주 특이한 분이고 매우 출중한 분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정말 우리 민족사에 더할 수 없는 큰 업적을 남겼고 위대한 어른이기도 하지만 불교에서도 이렇게 선지가 밝고 훌륭한 분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그런 큰 스님이십니다. 우리 민족사를 통틀어서 가장 큰 전쟁 그러니까 국토가 아주 초토화되다시피 하는 그런 전쟁을 두 번 겪었습니다. 임진왜란이라는 전쟁과 6. 25라고 하는 전쟁이에요. 임진왜란이라고 하는 그 전쟁 때 전쟁의 한 복판에서 민족의 수난을 건진, 이 민족이 멸망의 직전에 들어가 있는 그런 수렁 속에서 우리 민족을 건져내신 분이 서산스님이고 사명스님입니다. 서산스님의 제자가 사명이고 사명스님의 스승이 서산스님이에요.

스승과 제자가 공히 민족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셨고 참 불멸의 명작을 몇 권 남기셨어요.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선가귀감(禪家龜鑑』이라고 하는 글입니다. 『선가귀감』이라고 해도 되고 『선가구감』이라고 해도 되는데 ‘거북 구’ ‘거북 귀’ 이렇게 발음을 합니다. 이 『선가귀감』이라고 하는 이 책은 선종에 있어, 우리나라에서 선불교가 대한민국에 한반도 안으로 들어온 이후에 그 어떤 사람이 남긴 저술보다도 가장 뛰어난 저술이에요. 고려시대 때 불일 보조국사가 『수심결(修心訣)』이라고 하는 명작을 하나 남기셨는데 그 『수심결』보다 제 개인적으로는 훨씬 더 뛰어난 훌륭한 명작이다. 그래서 중국 불교에 갖다 놔도 별반 크게 뒤지지 않는 아주 훌륭하다 할 정도로 귀중한 그런 책입니다.

법정스님이라는 스님이 최초로 번역하셨어요. 법정스님 유명하죠. 그 스님께서 에세이 글만 많이 쓰신 게 아니고, 우리에게 중요한 책을 번역도 많이 하셨어요. 큰 업적을 많이 남기신 분인데 그 법정스님의 『선가귀감』에 나오는 제일 첫 페이지부터 읽어드리겠습니다.

 

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찍이 생겨나지도 않았고 죽어 없어지지도 않는다. 이름 지을 길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옛 어른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옛 부처님 나기도 전에 의젓하게 둥근 한 물건 석가도 알지 못한 일을 가섭이 어찌 전하랴! 이것이 한 물건의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이름 지을 길도 모양 그릴수도 없는 연유다. 육조 스님이 대중에게 물었다. “내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 너희들은 알겠느냐?” 신회선사가 곧 대답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 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된 연후다. 회양선사가 숭산으로부터 와서 뵙자 육조 스님이 묻기를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할 때에 회양은 어쩔 줄 모르고 쩔쩔 메다가 8년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가령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 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맏아들이 된 연유다.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출현하심은 마치 바람도 없는데 물결을 일으킨 격이다. 세상에 출현한다는 것은 대비심을 근본으로 삼아 중생을 건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한 물건으로서 따진다면 사람마다 본래면목이 저절로 갖추어졌는데 어찌 남이 연지 찍고 분발라 주기를 기다릴 것인가? 그러므로 부처님이 중생을 건진다는 것은 공연한 짓인 것이다. 억지로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 마음이라 부처님이라 혹은 중생이라 하지만 이름에 얽매여 분별을 낼 것이 아니다. 다 그대로 옳은 것이다. 한 생각이라도 움직이면 곧 어긋난다.

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찍이 생겨나지도 않았고 죽어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래 여기 한 물건이 뭐냐? 여기 한 물건이 있어요. 여기 우리가 각자 다 하나씩 가지고 있어. 한 물건. 이거 없는 사람 있으면 저한테 얘기해봐요. 없는 사람 있나요? 그럼 다 아시는 모양이네. 이게 우리의 마음이라 그러면 될 텐데, 왜 한 물건이라 그러느냐? 마음이라 그러면 마음이란 말에 걸리고 불성이라 그러면 불성이란 말에 걸리고 본성이라 그러면 본성이란 말에 걸리니까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그냥 이름도 없는 걸로 모양도 없는 걸로 냄새도 없는 걸로 그런 것인 만큼 그냥 한 물건이라 하자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런데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이냐?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찍이 생겨나지도 않고 이건 누가 만든 게 아니야. 저 거룩하고 훌륭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셔서 그게 우리를 만들어 주느냐? 그렇지가 않아요. 이건 본래 있는 거야. 우주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고, 우주가 멸망해서 없어져도 있는 물건이야. 다른 거는 다 멸망해서 없앨 수 있으나 이것은 없앨 수가 없어. 그러니까 신령하여 생겨나지도 않았고 생겨나지도 않았으니까 없어지지도 않는다 이런 뜻이에요. 이름 지을 길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이것은 뭐 억지로 이름 지어놓은 것이 마음이고 억지로 이름 지어놓은 것이 불성이고 우리의 근본자성이다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어찌 맞는 이름이겠느냐 이래요.

내가 이름이 참 많습니다. 내가 원래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이름이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나한테 이름 지어주기를 종률이야. 이름이 종률. 이 이름이 돼 가지고 절에 오니까 우리 스님이 나한테 지철이다 이렇게 지어주더라고. 또 내가 스스로 이름을 짓기를 묵전 지금은 효림 또 동천. 내 이름이 여러 개야. 이렇게 써도 좋고 저렇게 써도 좋고. 그래 똥이라 하면 어떻고 돼지라 하면 어떻고 고양이라 하면 어떻습니까? 사람이 불러주고 내가 그렇게 쓰면 내 이름 되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것이 한 물건의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이름 지을 길도 모양 그릴 수도 없는 것이다.

육조 스님이 대중에게 물었다. 육조 혜능이라고 하는 큰 스님이 계셨는데 이 스님이 법상에서 물은 거야. 대중들한테 물어요. “내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 너희들은 알겠느냐?” 이랬어요. 그 중에서 제일 나이가 어린 신회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어요. 하택 신회라고 하는 스님인데 불교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위대한 고승입니다. 그런데 이 스님이 그 당시 열네 살인가 열여섯 살인가 먹었다 그래요. 이 스님이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가지고 대답하기를 참 멋지게 대답을 했어.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고 신회의 불성입니다.” ‘이 한 물건이 뭐냐?’ 그러니까 ‘나의 마음이기도 하고 스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답하면 될 거 아니에요? 내가 그랬잖아요. 마음이라고. 그래 그렇게 했어. 틀린 대답은 아니죠.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고 신회의 불성입니다. 그래 이미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그랬는데 기존하는 이름을 들먹여서 답변한 거야. 그러니까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된 연유다.

이게 오묘한 도리가 있어. 맞게 답했는데 서자가 돼 버렸어. 대충 왜 그런가 짐작을 하겠죠. 회양 선사라고 하는, 남악 회양이라고 하는 분인데 육조의 제자 가운데 아주 특출한 분입니다. 그런데 남악 회양선사가 숭산으로부터 와서 육조 스님에게 절을 하고 인사를 드렸단 말이야. 육조 스님이 묻기를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이랬어요. 회양은 답변을 못했죠. 어쩔 줄 모르고 쩔쩔 맺어 그냥. 우물쭈물하고 그러다가 8년 만에야 도를 깨치고 나서 다시 육조 스님 앞에 가니까 육조 스님이 다시 또 묻는 거야. “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다시 또 한 번 물었어요. 답변하기를 “가령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 마음이라 해도 안 맞고 불성이라 해도 안 맞고 자성이라 해도 안 맞아서 한 물건이라고 했는데 한 물건이라 하면 그게 맞는 말입니까? 안 맞는 말이잖아. 그러니까 이것은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는 것이니까 이래도 안 맞고 저래도 안 맞고 맞기로 하면 또 다 맞지. 그래 가령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답변했어요. 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맏아들이 된 연유다. 제일 큰 제자가 된 거지.

요즘은 먼저 스님 되면 밥그릇 수 가지고 따지고 이러는데, 옛날 큰스님들의 도량에서 제자를 정하는 데는 법력이 높고 안목이 출중하면 그 사람이 적자가 되고 맏아들이 되는 거야.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출현하심은 마치 바람도 없는데 물결을 일으킨 격이다. 무풍기랑(無風起浪)이라 이래요. 참 내가 좋아하는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없을 무’ 바람도 없는데 랑자는 ‘물결 랑’자야. 물결이 일어난다 이 소리 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출현하심은 마치 바람도 없는데 물결이 일으킨 격이다. 그래 가만 놔두면 될 걸 가지고 억지로 도 닦으라고 하는데, 왜 우리가 다 도인이고 부처인데 뭐 자꾸 닦으라 하느냐 말이야. 도를 깨달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대로 다 부처님입니다. 비유하는데 이렇게 되어 있어요. 도를 깨달았잖아요? 뭐 깨달을 게 있어서 깨달은 게 아니야.

적절한 비유를 들어서 얘기를 할게요. 내 소리가 아니고 부처님 경전에 나오는 소리야. 어떤 사람이 거울을 들여다보니까 자기 얼굴이 안 보이는 거야. 거울이 깨져서 없어져버렸어. 그런데 거울이 깨진 것은 모르고 자기 얼굴이 없어졌다고 돌아다니면서 ‘아이구, 내 얼굴이 없어졌다. 내 얼굴이 없어졌다.’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사람들이 보니까 저 사람이 미쳤거든. 거울을 갖다 주면서 보여주니까, 안 깨진 거울을 보여주니까 자기 얼굴이 보이거든. ‘아이구 없어진 내 얼굴을 찾았다.’ 그 없어진 얼굴을 찾은 게 아니잖아요. 원래 그대로 있는 거잖아요. 우리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마음을 가지고 다니면서 마음 찾는다, 마음 찾는다 하면서 돌아다녀. 본래 있는 건데 그걸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을 모르는 거야.

세상에 출현한다는 것은 대비심을 근본으로 삼아 중생을 건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본래 잃어버린 일이 없는 걸 자꾸 찾으라 하는 것은 부처님이나 조사가 굽혀서 새롭게 자비심을 일으켜서 중생을 건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물건으로써 따진다면 사람마다 본래면목이 저절로 갖추어졌는데 어찌 남이 연지 찍고 분 발라주기를 바랄 것인가? 부처님이 어찌 내 마음을 찾아줄 것이며 조사 스님이 어찌 내 마음을 찾아주겠어요. 아니 본래 여러분이 다 가지고 있는 건데 봉국사 주지 스님이 여러분들 마음을 어찌 찾아주겠어요. 그냥 그렇게 있는 건데.

그래 이렇게까지 해도 아직 잘 모르니 참 갑갑하기는 갑갑해. 그래 그거는 비유하자면 남이 연지 찍고 분 발라주는 거나 같은 것이다. 어찌 그런 걸 기다릴 것인가? 그러므로 부처님이 중생을 건진다는 것은 공연한 헛짓이다. 중생을 건진다고 했는데 건질 게 뭐가 있어. 본래 그런 것인데. 부처님도 자기 부처님이고 나도 부처님인데 뭘 부처님이! 이 세상에 이런 종교가 어디 있습니까? 억지로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 마음이라 또는 부처님이라 또는 중생이라 하지만 이름에 얽매여 분별을 낼 것이 아니다. 똑 같은 말이라 이게. 중생이라 하는 말이나 부처님이라 하는 말이나 똑같은 말이야. 다 그대로 옳은 것이다. 한 생각이라도 움직이면 곧 그르다. 그래서 옛 스님들이 항상 자주 하시는 말씀이 닦아서 이룰 것이 없다. 다만 물들지 않으면 된다.

누가 내게 찾아와서 물어요. “스님. 탐욕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라고 하는데 어떻게 비웁니까?” 내가 차를 한잔 따라주면서 “이거 마셔라.” 그래 마시면 찻잔이 비잖아요. 탐욕? 아니 우리가 백화점에 가서 사고 싶은 좋은 물건이 있는데 아이고 돈이 없으니까 안 산다 하고 놔두면 물건 안 사는 게 되잖아요. 물건 사는 마음을 버려버렸잖아요. 물건 사고자하는 그 마음을 버렸으면 되는 거지. 아이구 스님 저 백화점에 좋은 옷이 하나 있는데 그걸 사고 싶은데 그거 안 사도록 마음을 버리도록 어떻게 좀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어떻게 가르쳐줍니까? 안 사면 되는 거야. 탐욕을 버리는데 무슨 비법이 있겠느냐? 탐욕을 버리면 되는 거지. 안 그래?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이치를 알면서도 못 버리는 거야. 그래 들고 있는 거야. 옛날 스님들이 일러서 말씀하시기를 이래요. ‘놓아버려라!’ 그러니까 ‘뭘 놓으라 합니까? 놓을게 없는데요.’ ‘그러면 들고 있거라!’ 하하하 오늘 이걸로 끝내겠습니다.

 

<정리 : 자심화>

 

* 이 기사는 지난 9월 5일 일요명상법회에서 하신 법문을 요약해서 정리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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